본문 바로가기

칼럼/투고

[논평] 정부는 ‘촛불반성백서’ 작업을 당장 중단하라!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백서] 발간 중단을 촉구하며

총리실 산하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서는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 시위’와 관련한 소위 ‘촛불반성(?)백서’ 발간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2008년 인왕산에 올라 촛불행렬을 바라보며 반성하고 뉘우쳤다는 이명박 대통령이 2년이 지난 이제 와서 어이없게도 ‘국민’에게 반성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지난 5월, 조선일보 촛불 2년 특집으로 기사화되어 국민의 분노를 산 일이 있다.

촛불 백서 작업의 일환으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에서 국민의 건강권을 지키고자 나섰던 각계 인사들에게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 관련 의견조사]라는 제목의 사실상의 반성 요청서가 배부되었다. 본 의원실에도 그 의도가 명백히 보이는 ‘의견조사’ 안내문이 발송되었다. 촛불백서 발간을 위해 ‘현 시점’에서 본 당시 시위에 대한 의견을 조사한다는 것이다.

2008년 촛불시위는 졸속적인 한미 쇠고기 협상에 대한 정부의 추가 협의를 이끌어 내어,우리 국민의 신뢰가 회복될 때까지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를 수입하지 않기로 하는 등의 성과를 이루었다. 뿐만 아니라 국내적으로도 가축전염병예방법 개정으로 수입 축산물에 대한 검역 조치를 강화하여 국민 건강권과 검역주권을 보호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2년이 지난 지금, 이명박 정부는 ‘전문가들의 반성’ 운운하며, 촛불의 의미를 훼손하고 있다.

정부가 제대로 된 촛불시위 백서를 내려면 정부의 잘못된 협상에 대한 반성, 촛불시위 폭력진압에 대한 반성, 국민과의 소통실패에 대한 반성, PD수첩 제작진 검찰 수사 및 형사고소 등 언론의 자유 탄압에 대한 반성이 최우선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대통령은 이러한 반성은 전혀 없이 국민과 비판적 지식인들에게 '사상전향서'를 강요하듯이 반성을 촉구하고 있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 어느 때보다도 위기에 빠진 농업을 살리기 위해 농업정책 연구에 매진해야 할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백서 발간을 담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농업정책을 선도하는 전문연구기관’임을 자처하는 국책연구기관이 각국과의 FTA협상이 한창이고, 쌀대란으로 농민이 신음하고 있는 마당에 국민의 혈세로 농업정책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백서 발간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본연의 임무를 충실히 한다면 오히려 한미 쇠고기 협상을 비롯해 농업강국과의 FTA 협상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농민들의 의견수렴을 해야 할 것이며, 사전대책 없이 추진되고 있는 독단적인 농업통상의 문제점을 지적해야 할 것이다.

지금이 어떤 시점인가?

최소한의 건강권과 검역주권을 지키고자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던 온 국민의 염원을 비웃기라도 하듯, 근래 한미 FTA 재협상 움직임이 가시화 되고 있는 시점이다.

미국 언론에선 연일 ‘쇠고기’를 화두로 떠올리며, 30개월 이상 쇠고기를 내줘야 한미FTA 미의회 통과가 가능하리라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2년 전, 온 국민의 힘으로 얻어낸 ‘30개월 미만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라는 최소한의 보호조치가 사실상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BSE 발생국으로 쇠고기 수입이 전면 금지된 캐나다조차 미국과 같은 OIE의 ‘위험통제국’ 지위를 내세우며, 형평성을 앞세워 WTO에 우리나라를 제소한 상황이다.

지금 이 땅의 농민들은 유례없는 쌀 대란에 시달리고 있으며, 한국 농업을 뿌리 채 흔들 수도 있는 한중 FTA를 코앞에 두고 있다.

사태가 이러할진대, 광우병 위험 쇠고기 수입을 적극 막아나서야 할 정부는 엉뚱하게도 ‘전문가들의 반성’ 운운하며 백서 발간에 나서고 있다. 국무총리실은 국민의 세금으로 엉뚱한 촛불반성백서 발간을 획책할 것이 아니라,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의견조사 등 백서발간 관련 일체의 행위를 중단해야 마땅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은 주변국의 수입조건이 우리보다 나을 경우 쇠고기 재협상을 하겠노라고 약속한 바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 약속부터 지켜 ‘내장, 뇌, 척수, 등뼈, 분쇄육, 선진회수육’의 수입을 금지시키는 협상을 이끌어내야 할 것이며, 또한 광우병 추가 발생시 잠정수입중단조치, 검역과정에서 광우병위험물질 검출 시 수입물량 전체 불합격, 작업장 수출승인취소 시 1년간 재승인 보류 등의 검역 주권도 함께 되찾아야 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대국민담화에서 분명히 밝힌 바 있다. “국민들이 원하지 않는 한 30개월령 이상의 미국산 쇠고기가 우리 식탁에 오르는 일이 결코 없도록 할 것입니다.”라고. 또 다시 2010년 촛불의 물결을 다시 보고 싶지 않다면, 이명박 정부는 ‘존경하는 국민여러분’께 한 약속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며, 국민을 우롱하는 행위가 어떤 결과를 불러 일으켰는지 똑똑히 기억해야 할 것이다.

강기갑 국회의원(민주노동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