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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노산 '호연재' 책으로 거듭나다

- 호연재 훈장과 김삿갓의 시담(詩談)인상적 -


 


240여년전 노산공원에 창건된 신학문의 요람 호연재가 일제(日帝)에 의해 강제 철거된 지 100년만에 복원되면서 이를 기념하는 '호연재' 출판기념회가 5월 2일 오후 노산 호연재 광장에서 열렸다.

사천시와 호연재 보존회(회장 천용욱)가 마련한 '호연재 출판기념회'에는 정만규 사천시장과 신현권 교육장, 지역의 도의원과 시의원, 각급 학교장과 문화예술인, 호연재 복원추진위원, 시민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충.효.예와 호연지기 정신을 되새겼다.

특히, 출판 기념행사에서 당시 호연재의 박유진 훈장과 김삿갓 김병연이 한시(漢詩)로 화답하는 토막극, 호연재 시(詩)낭송, 다례시연 등을 재연하여 감명을 주었다.

천용욱 회장은 인사말에서 "호연재 복원 의의와 그 역사적인 정체성을 깨우치기 위해 서책을 발행하여 온전한 보존과 기품있는 학풍을 되살리겠다"라고 말했다.


한편 한 권의 책으로 빛을 본 호연재는 대한민국 국사, 진양지, 삼천포.사천市史, 호연재 詩集(국립중앙도서관), 삼천포시 문화유적 지표조사 등에 수록된 여러 기록들을 정리하여 정체성을 정립하고 노산 호연재의 역사적 배경, 호연재 창건, 운영, 발전, 구국민족혼의 발현, 충효예의 체험교육 등을 125쪽으로 엮어냈다.

호연재는 조선 영조 46년(1770년)에 개성에서 내려온 선현들이 건립한 이 고장의 대표적인 학당(書齋)으로서, 이 지역의 인재들이 모여 학문을 논하고, 詩文(시문)을 짓던 곳이다.

문향 넘치던 이 호연재에서 학문을 논하던 대표적 사람들을 지금도 팔문장(八文章)이라 일컫고 칭송할 정도로 호연재는 이 고장 사람들에게 친숙한 존재였고, 이를 계기로 이 고장에는 19군데의 서당이 마을별로 생겨났다.

그 학맥은 면면히 계승되어 구한말 무렵부터는 호연재에 모여든 문객들이 망국의 비분강개를 시문집으로 엮어내게 되자 1906년 일본경찰은 호연재를 이 지역 불온사상의 발상지로 지목하고 강제철거하기에 이르렀다.

그에 앞서 이 고장 선각들은 1901년 호연재를  보흥의숙으로 개칭해 교육기관으로 출범시켰고, 1905년 광명의숙으로 이름을 바꾸어 사립학교로서의 정규교육을 시작하였으며, 광명의숙을 모태로 하여 삼천포 공립보통학교(지금의 삼천포 초등학교)가 설립되었다.

철거된 후에도 호연재는 주경야독하는 초당 서재로 운영되면서 훈장과 학동들이 호연지기로 뭉쳐 3.1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고, 이 고장 원로와 민초들이 뜻을 모아 호연재 복원에 나서 2008년 10월 한식목조기와 팔작지붕에 98.1제곱미터의 정면 5칸, 측면 2칸 건물로 복원하였고, 이 고장 문운의 역사성과 넋을 일깨워 충 효 예의 중심학당으로서 호연지기 정신을 길이 전하기로 하였다.